최초의 두 사람

2016. 3. 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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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다 했더니 신체를 스캔하던 자비스의 음성에 역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임신입니다 Sir.]


원래는 아이 가질 생각이 없었던지라 좀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로부터 느낀 것은 단 하나.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그 덕에 1순위로는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생각했건만, 이젠 아이를 가졌으니 1순위는 지우고... 2순위였던 이상적인 아빠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키우기로 마음먹으니 연인인 스티브가 생각났다.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예상해보려 했지만 금세 관두었다.

 

그래 이렇게 하자. 오늘 저녁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고,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 스티브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기로. 두 개의 봉투를 준비해서 한쪽엔 혼인 신고서를, 한쪽엔 친권포기각서를 넣고 기뻐해주면 오른쪽 봉투를 망설여하면 왼쪽 봉투를 내밀어 줘야지. 아이 아빠로써 책임지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단지 자신처럼 크지 않길 원했기에 기왕이면 아이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해야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랄 것 같았다. 

 

그리고 5시간 뒤... 양손에 봉투를 든 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손을 맞잡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기에 나도 같이 웃어주며 말했다.


"나 임신했어." 

 

그 말에 스티브의 눈이 커지더니 곧바로 쿵 소리를 내며 기절해버렸다. 이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결국 아머를 불러내어 스티브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날아갔다. 1시간 뒤 깨어난 스티브는 나를 보고 어버버 거리다 다시 기절해버렸다.

 

이후로 스티브가 보이면 "나 임신했어. 좋아? 싫어?" 하고 물었다. 그러면 스티브는 얼굴이 시뻘개서는 눈물을 그렁거리다 소녀처럼 뛰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말이 소녀지 떡 벌어진 근육남이 종종걸음으로 뛰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보이면 도망가고 물어보면 울어버리는 덕에 결국 애를 낳을 때까지 스티브에게서 대답을 듣지 못 했다. 조막만 한 아이를 안아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를 부르는 걸 보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다시 물어보면 시뻘게진 얼굴로 울어버린다. 왜 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한참 분위기 잡은 침대 위에서 달콤하게 키스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그땐 왜 대답 못하고 울었는지 묻자 스티브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아이 가졌다는 소리에 기쁘고 벅차오르는데 수줍어서 울었단다. 기가 막힌다. 다시 생각하니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깔깔거리고 배 잡고 웃다가 다시 붙여오는 입술에 웃음을 멈추고 조용히 집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티브는 내가 임신했다고 말한 그날(기절했다 깨어나서)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 능구렁이 같은 슈퍼 솔저... 

 

-끝-

Posted by 조나쁨 :

[스팁토니] 인어의 진실

2015. 1. 28. 09:36 from

깊은 바닷속 포세이돈 하워드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심해엔 굉장히 아름다운 인어왕자 토니가 살고 있었음. 특유의 밝은 성격과 유쾌하고 바른 입담으로 모든 바다생물들의 사랑을 받고 살았는데, 어느 날 수면 위로 일광욕을 즐기러 나왔다가 뱃놀이를 나온 스티브와 그의 선원들에게 발견됨.

 

인어가 나타났다며 흥분한 사람들이 다급히 토니를 붙잡는데 그 와중에 꼬리지느러미가 8가닥으로 찢어짐. 다들 인어의 눈물이 진주가 된다더라 인어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더라 옛 전설을 읊으며 신 나 하고, 토니는 그 소리에 겁에 질려 도망 치려 발버둥 치지만 소용없었음.

 

배 안쪽에 급히 만든 수조에 토니가 담기고 다들 술을 들이부으며 뭍으로 돌아가 돈벼락 맞을 기쁨에 한껏 들떠있었음. 이 와중에 스티브는 인어가 너무 신기해서 한 번 더 구경하려고 몰래 수조로 다가가는데 토니가 막 살려달라고 자기를 살려주면 자신의 아버지인 하워드가 큰 포상을 내릴 거라고 울먹울먹 함. 근데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고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처연했던지라, 결국 선원들 몰래 풀어줌. 선원들은 술이 떡이 되게 취해서 다음날 없어진 토니를 보며 역시 인어라고 신묘한 마법을 부려 사라졌다며 아쉬워했음. 모든 사실을 아는 스티브만이 헛기침을 하며 모르쇠 했음.

 

중간은 좀 압축해서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는데 포세이돈이 고맙다며 금은보화를 줘서 스티브는 부자가 되었음. 그런 스티브에게 많은 혼담이 오갔는데 그중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짐. 근데 이 여자가 좀 허영 많고 씀씀이가 헤프고... 뭐 저 시기 꽃뱀 같은 년임. 스티브에게 어떻게 이런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냐고 물음. 스티브는 처음엔 뭐 열심히 일했다며 말 돌리고 비밀로 하려 했지만 여자도 눈치가 눈치인지라, 열심히 일한다고 벌릴만한 재산이 아니란 걸 알겠지. 그래서 한가지 꾀를 부리게 됨.

 

처음엔 맛있는 거 해준다며 상을 차리는데 그 상에 한 잔 두 잔 술을 덧붙이다가 아주 떡이 되게 취하게 만들어놓고 살살 꼬셨더니 잔뜩 취한 스티브는 술김에 그만 전부 말하는 거.

 

'사실 내가 바다의 왕 하워드의 아들인 인어를 구한 적이 있다. 그 보답으로 많은 보석을 가지게 되었다.'

 

그 소리에 귀가 쏠깃 해진 여자는 그 인어랑 지금도 만나냐, 어디서 만나냐, 혹시 인어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것저것 다 캐묻는데, 인어에 대한 자질구레한 것들과 보름달 뜨는 밤마다 어느 해안에서 만난다는 사실까지 알아낸 거.

 

그리고 여자는 스티브 몰래 손을 씀. 보름달 뜨는 날, 스티브에게 수면제 섞인 음식을 먹여 재우고선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을 데리고 그 해안으로 가는데 진짜 인어가 바위 위에 앉아있네? 두말할 것 없이 당장 잡으라며 용병에게 지시를 내림. 토니는 속수무책으로 잡힙니다.

 

놀래서 '당신 누구야?! 스티브, 스티브!!' 하고 소리 지르는데 여자가 '그이는 안 와요. 나에게 당신을 내 맘대로 해도 좋다고 했거든요.' 하고 거짓말을 함. 여자는 토니의 얼굴을 잡고 '정말 눈물이 진주로 변하나요?' 하고 뺨을 때림. 그러나 사실 어지간한 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종족이 인어인지라 토니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더 독기 여린 눈으로 여자를 째려보는데, 여자도 스티브한테 들은 게 많아서 사전에 준비를 좀 철저히 했겠지. 품에 숨겨온 유리병을 꺼내는데, 그 안에 든 건 사람한텐 무해하지만 인어한텐 염산 같은... 그런 게 있다고 칩시다. 암튼 그걸 꺼내서 용병한테 토니 머리끄덩이 잡게 하고 왼쪽 눈 위로 그걸 들 이 부음. 살 타는 냄새와 함께 찢어지는 비명이 짜여 나오고 피가 섞인 붉은빛을 띤 진주가 툭툭투툭 하고 떨어짐. 여자가 진짜 진주라며 신 나서 웃기 시작함.

 

그러나 이 사람들이 관과 한 것 한 가지. 아직 바닷가 근처이고... 바다는 하워드의 영역이고... 토니는 바다의 신 하워드의 아들이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쓰나미가 일어났습니다. 전조 없이 거세게 들이닥친 파도에 전부 휩쓸려서 바닷속으로 사라졌음.

 

다음날 깨어난 스티브가 하루 종일 잠든 것에 놀라 해안가로 달려가보지만 만나기로 한 장소엔 아무것도 없었음. 한참을 토니를 부르며 찾아보다가 돌아가는데 자신의 약혼녀도 사라지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한편, 심해로 돌아간 토니의 상처는 너무 깊었고 인간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썩어들어갔는데, 결국 더러워진 악한 마음에 먹혀버려서 저주스러운 존재로 다시 태어남.

 

가닥가닥 갈라졌던 지느러미대로 꼬리가 나뉘어 흉측한 문어발이 되고 타들어간 왼쪽 눈은 붉게 물들었음. 그 이후로 다시는 인간 세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런 허황된 꿈에 빠져사는 인어들을 잡아 저주를 내리며 살았음. 스티브는 그 이후로 바다에 나가 토니를 찾았지만 다시는 토니를 찾을 수 없었고 토니는 그런 스티브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는 사실 울슐라토니였다. 

Posted by 조나쁨 :

스티브는 생각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아주 잘 받는 성격이다. 그로 인해 참 재미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가령 예를 들면

 

"이걸로 이번 회의는 끝내도록 하지. 포스가 함께 하길."

 

어제저녁 스타워즈를 본 후로 마무리 대화를 할 땐 꼭 저 대사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처음엔 다들 '이게 뭐지?' 하는 얼굴이었지만 다음날 스타트렉을 봤는지 벌칸식 인사를 하는 스티브에 웃음을 참지 못하여 뒤돌아 끅끅거리는 요원들이 생겼다. 이젠 다들 스티브가 전날 무슨 영화를 봤는지 맞추는 내기가 실드 내 유행할 정도였다

 

"저거 분명 원초적 본능이라니까? 캡틴이 다리 꼬는 거 본 적 있어?"

"손 굴리는 걸로 봐선 신세계가 분명해."

"하하하 바보들아. 돈 낼 준비하시지, 지 아이 조에 올인!"

 

아쉽게도 전날 스티브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식이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하지만 어벤져스 멤버들도 알고 있었다.

 

"절~대 말해주지 마. 알겠지?"

 

하고 당부하는 토니로 인해(말 안 해도 재밌어서 가만히 있을 거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뭔가 꾸미는 게 있겠지. 냇은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후 회의를 하기 위해 보인 멤버들은 토니가 집에서 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물론 어떤 이유로 쉬는지는 벌게진 스티브의 얼굴 덕에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어제 데이트했다면서 뭐 하고 놀았어요?"

"놀기는... 그냥 집에서 쉬었네."

 

부끄러운 듯 콧등을 매만지는 모습에 놀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뭐 하고 쉬었는데요?"

"그냥... 소파에 누워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오늘은 딱히 다른 점이 안 보여서 영화를 건너뛰었나 싶었는데 '무슨 영화지?' 하고 다들 등 뒤로 내기판을 벌였다.

 

"무슨 영화 봤어요? 재밌었으면 추천해줘요."

 

우물쭈물 묘하게 뜸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벤자민, 벤자민, 벤자민', '언처터블이길!' 다들 마른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기다리는 순간 스티브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로크백마운틴...이라고... 흠흠,"

 

오... 세상에... 멤버들은 자, 회의 다시 시작하죠!라며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그거 되게 유명한 게이영화 아냐? 야한 거."

 

작게 소곤거리는 팔콘의 말에 다들 새로운 내기를 벌였지만, 한쪽으로만 몰리는 바람에 내기는 무산되었다. 분명 100프로 토니가 작정하고 영화를 골랐을 거고 그 후폭풍으로 회의에 나오지 못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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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나쁨 :

[스팁토니] 무제

2015. 1. 28. 09:36 from

토니는 최근 들어 어떤 망상증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

 

잠시라도 발을 멈추면 1분도 되지 않아서 제 목덜미를 낚아챌 것이라는 강박증으로 인해 그의 하루 대부분은 도망 다니는 것에 집중되어있었다.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좌석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불안하게 손을 물어뜯어야만 했다. 보다 못한 페퍼가 토니에게 병원에 가자고 제안했으나 토니는 거절하였다. 그와의 내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페퍼가 의아한 얼굴로 그가 누구냐고 묻자, 토니는 피가 살짝 배어 나오는 손톱 밑을 쭉 빨아내며 단 두 단어를 말했다. 

 

"금발… 파란 눈…."

 

페퍼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회사 주변에 금발과 파란 눈인 사람들을 접근금지시켰다. 그럼에도 토니의 불안함은 가실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토니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페퍼가 울고 불며 로디에게 연락해 수색전을 펼쳤지만 2년이 넘도록 머리카락 한올조차 발견하지 못 했다. 

 

이제 곧 3년. 토니는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되었다.

 

페퍼는 지치다 못해 담담해진 제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침착해졌다. 3년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기분이라 심장 한구석이 아릿하게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페퍼는 꿈을 꾸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방 한가운데 두꺼운 쇠사슬에 묶여 떨고 있는 남자… 몸 이곳저곳이 성적인 흔적으로 가득해 닦아내려는 듯 제팔을 벅벅 문지르는 토니를…. 

 

페퍼가 놀라 다가가려 하자 토니 바로 등 뒤에서 파란 안광이 번쩍였다. 금발. 페퍼는 그자가 토니가 말하던 금발에 파란 눈이라 확신했다.

 

남자는 뒤에서 토니 목을 붙잡아 저를 보도록 위로 올려잡았다. 버티려고 했던 것인지 어깨까지 새빨개져 덜덜 떨리는 목덜미가 애처로워 보였다. 

 

"이제… 이제 그만, 날 놔줘… 내보내줘…."

 

토니는 울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안돼 토니. 자네가 졌으니까 돌아갈 수 없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토니의 목을 힘껏 깨물었다. 악다문 신음이 울려 퍼지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그러게 잘 도망 다녔어야지. 이젠 늦었어."

 

남자의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페퍼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

 

어쩐지 무서운 꿈을 꾼 기분이지만, 페퍼는 꿈을 기억하지 못 했다.

Posted by 조나쁨 :

[스팁토니] 죽어버린 새

2015. 1. 28. 09:35 from
당연한 시간의 흐름이었다. 어쩌면 시간보단 환경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는 히어로 생활을 20년이나 유지하고 은퇴하여 2년 만에 사망하였다. 세간엔 테러집단의 소행이고 그에게 당한 빌런의 보복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진실은 충격적이게도 허무했다.

심장발작.

어찌 보면 토니 스타크 다운, 그러기엔 너무 허무했던 죽음이었다. 장례는 소소했지만 그가 누구였는가를 생각한다면 장례식 풍경이 어떠하였는지 짐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목놓아 우는 이들도 많았고 조용히 담담하게 슬픔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는 조용하다 못해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얌전했다. 그 블랙 위도우도 눈물을 흘렸건만 어째선지 연인이었다는 남자는 눈꺼풀도 깜빡이질 않았다. 죽기 직전 싸우기라도 한 것이냐며 어쩜 그래도 그렇지 저리 냉혹할 수 있느냐는 원성이 들렸다. 그러나 사실 스티브의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도 복잡하고 슬펐으며 엉망진창으로 뒤섞여있었다. 그는 토니가 죽기 직전까지도 함께 했다.

스티브는 10년 전부터 토니에게 히어로를 쉬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었다. 이미 그때부터 그의 심장발작은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토니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붙여올 뿐이었다. 몇 년을 조르고 졸라서 얻어낸 은퇴 이 건만, 뭐가 그리 급했던 건지 토니는 먼 길을 떠나버린 것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토니의 죽은 육체가 땅속 깊이 묻히는 순간까지도 스티브는 조용했다. 집에 돌아가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음식을 먹고 TV를 보고 쉴드에 나가 회의를 했지만 그의 행동엔 항상 무언가 빠진 것 같았고 비어있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였기에 그 모습을 눈치챈 사람은 몇 없었다.

스티브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토니가 보이는 듯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최대한 머릿속에서 토니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잠들지 못한지 사흘이 되어서야 보다 못한 배너 박사가 말을 건넸다.

"잠은 자고 있어요?"

그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그 후로 열흘이 더 지나서야 스티브는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계속 깨어있던 탓인지 스티브는 자신이 잠에 들었고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금방 인지해내었다. 제 앞에 펼쳐진 분홍색 보도블록 길을 보다가 걷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하면서도 푹신한  길에 신비로움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란색 하늘과 파란색 산. 녹색 바다가 펼쳐진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이런 꿈을 왜 꾸는 것일까 의아해하며 한참을 걷는데 저 멀리 누군가 보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녹색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뒷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었었다. 스티브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어쩐지 가슴이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토...니"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죽은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토니!"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이름을 부르자 정장의 남자는 스티브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스티브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잊으려 했던 연인이 제 눈앞에 멀쩡히 서있는 꿈이라니! 기쁨과 괴로움이 꼬여들어가 속을 파내는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답답해져만 갔다.

"... 스티브?"

그리고 당황스럽게도 토니가 제 이름을 부르자마자 꿈에서 깨어나버렸다.



스티브는 울고 있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슬픔이 터진 둑의 물처럼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을 놓을 듯 꺽꺽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반나절을 울고 슬퍼하다가 다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꿈속에서 눈을 뜨니 토니가 저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스티브! 정신 들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데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니...? 이게 무슨, 꿈이..."

늘어진 몸을 일으키려 들자 토니는 엉엉 울면서 다시 제 품에 안겨 울어댔다. 스티브는 그런 토니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너무도 현실 같지만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꿈. 스티브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애써 모른척했다. 토니, 죽어버린 내 연인이여. 왜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나.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슬퍼할 내가 불쌍하지 않은가? 스티브는 조용히 부드러운 브루넷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입술을 내리눌렀다.

"스티브... 벌써 죽었어?"

그 소리에 아래를 내려보니 눈물에 잔뜩 젖어 가라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들어올려졌다.

"왜 이곳에 왔어?"

스티브는 토니의 말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기에 의문스러운 마음을 물 흘리듯 흘려보내버렸다. 중요한 건 눈앞의 토니였다. 비록 그 모습이 꿈일지라도 그리웠던 마음을 가득 담아 숨죽여 껴안았다.
Posted by 조나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