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다 했더니 신체를 스캔하던 자비스의 음성에 역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임신입니다 Sir.]
원래는 아이 가질 생각이 없었던지라 좀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로부터 느낀 것은 단 하나.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그 덕에 1순위로는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생각했건만, 이젠 아이를 가졌으니 1순위는 지우고... 2순위였던 이상적인 아빠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키우기로 마음먹으니 연인인 스티브가 생각났다.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예상해보려 했지만 금세 관두었다.
그래 이렇게 하자. 오늘 저녁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고,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 스티브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기로. 두 개의 봉투를 준비해서 한쪽엔 혼인 신고서를, 한쪽엔 친권포기각서를 넣고 기뻐해주면 오른쪽 봉투를 망설여하면 왼쪽 봉투를 내밀어 줘야지. 아이 아빠로써 책임지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단지 자신처럼 크지 않길 원했기에 기왕이면 아이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해야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랄 것 같았다.
그리고 5시간 뒤... 양손에 봉투를 든 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손을 맞잡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기에 나도 같이 웃어주며 말했다.
"나 임신했어."
그 말에 스티브의 눈이 커지더니 곧바로 쿵 소리를 내며 기절해버렸다. 이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결국 아머를 불러내어 스티브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날아갔다. 1시간 뒤 깨어난 스티브는 나를 보고 어버버 거리다 다시 기절해버렸다.
이후로 스티브가 보이면 "나 임신했어. 좋아? 싫어?" 하고 물었다. 그러면 스티브는 얼굴이 시뻘개서는 눈물을 그렁거리다 소녀처럼 뛰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말이 소녀지 떡 벌어진 근육남이 종종걸음으로 뛰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보이면 도망가고 물어보면 울어버리는 덕에 결국 애를 낳을 때까지 스티브에게서 대답을 듣지 못 했다. 조막만 한 아이를 안아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를 부르는 걸 보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다시 물어보면 시뻘게진 얼굴로 울어버린다. 왜 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한참 분위기 잡은 침대 위에서 달콤하게 키스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그땐 왜 대답 못하고 울었는지 묻자 스티브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아이 가졌다는 소리에 기쁘고 벅차오르는데 수줍어서 울었단다. 기가 막힌다. 다시 생각하니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깔깔거리고 배 잡고 웃다가 다시 붙여오는 입술에 웃음을 멈추고 조용히 집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티브는 내가 임신했다고 말한 그날(기절했다 깨어나서)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 능구렁이 같은 슈퍼 솔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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